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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참 안될때 (fm02)

유안Choi 2025. 9. 4.

뭔가를 해야 되는데

자꾸만 미루고 안 하고 있을 때

 

그게 미루고 있는 건지, 결국 그건 나랑 맞지 않아서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루는 게 아닌 게 되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켜서 안 미루게 되어 버린 것인지.

 

지금도 그냥 하면 되는데 글이라도 쓰면 뭔가 찾아질까 하여 써 보았는데,

 

그러면서 이 순간을 무엇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에 히레마레리온 이라는 지역에 살았던 크레스포레스의 일화가 좋을 것 같다. 당시 그리스에는 자신의 철학적, 자연과학적 연구에 몰두하다 눈이 멀어 버린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처럼 육신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철학자들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팽배해 있었다. 크레스포레스가 늘 몰두하던 문제는, 피타고라스가 말했던 '지구는 둥근가'였다. 그는 직접 자신이 살고 있는 히레마레리온에 말뚝 하나를 박아 놓고, 내가 이곳을 기준으로 해가 뜨는 곳으로 쭉 걸어간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 사람들에게 '지구는 둥글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크레스포레스는 자신의 철학적 자연과학적 해답을 얻는 일정을 준비하였지만 일단, 집을 너무 오래 비우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애인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나아가 그만한 여행 경비도, 타고 갈 말도, 배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뚝만 박아놓고 떠나지 않고 집 안에 앉아서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청년이 '지구가 둥글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지구의 둘레까지 계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크레스포레스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흥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 말뚝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증표로 말뚝을 뽑지 않았다. 

 

물론 크레스포레스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히레마레리온 이라는 곳도 없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안 하고 있다.

 

처음부터 내가 해야 할 '그것'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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