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는 어떻게 나를 느끼는가?] 4화,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공감과 타자성

당신의친구 2025. 4. 20.
728x90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공감과 타자성

공감은 정말 가능한 감정일까요? 레비나스의 타자성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은 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지를 사유하고, 그럼에도 우리가 연결되는 이유를 탐색합니다.

공감과 타자성

 

 

“그 마음 이해해.”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물을 보며, 함께 울기도 하죠.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혹은, ‘이해한다’는 말은 단지 위로에 가까운 제스처일 뿐일까요?

이 글은 ‘공감’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고립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본 글은 블로그 시리즈 [나는 어떻게 나를 느끼는가?]의 4화입니다.

인간의 감정과 의식, 인공지능과의 경계를 주제로 총 5편이 연재됩니다.

👉 전체 시리즈 보기 | 이전 화(3화): AI는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감정은 공유될 수 있을까?

 

누군가가 겪는 고통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함께 겪는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상황’을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질감은 결코 동일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슬픔은 누구에게나 다른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어떤 이는 먹먹함으로, 어떤 이는 눈물로, 또 어떤 이는 침묵으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도 슬퍼”라고 말할 때, 그 감정은 정말 같은 것일까요?

니 감정을 ‘이해한다’는 착각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자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타인은 결코 나와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으며, 그 사람의 내면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는 것이죠.

공감은 이러한 미지의 벽을 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한계에 부딪힙니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방식대로 그 감정을 해석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반응형

공감=노력, 완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감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공감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공감이 시작됩니다. 그 공감은 판단이 아니라 ‘머무름’에 가깝습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공감은 ‘설명’이 아니라 ‘존재’입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으려는 태도.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만나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728x90

그럼에도 우린, 연결된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공유되지 않고, 타인의 내면은 타인만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갑니다. 그 거리감을 안고도, 서로의 곁에 있으려 애쓰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닐까요?

오늘 당신은, 누군가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려 했나요? 아니면, 그저 곁에 있으려 했나요?


📖 다음 이야기: 5화 – 표현된 감정은 진짜일까? (인간만의 감정)
📂 시리즈 전체 보기: 나는 어떻게 나를 느끼는가? 시리즈 모음

728x90
728x90
SMALL

댓글


top